드라이하고 털털한 맛. 두툼한 서양식 스테이크와 잘 어울릴 듯 하다. Gato Negro가 회사명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San Pedro라는 회사의 상표라고 한다. 위에서 두번째쯤 되는 라인이란다.
와인은 생산지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예전부터 와인을 생산해 온 구세계 와인과 그렇지 않은 신세계 와인. 구세계 국가들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가 있고 신세계 국가들에는 미국, 호주 등 비유럽 국가가 있다. 당연히 칠레는 신세계 와인~
나 같은 초보자들에게는 신세계 와인이 더 잘 어울린다.
우선, 구세계 와인들은 라벨에 포도 품종을 표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리 공부 좀 하고 와서 마시라는 자세.. 하지만 신세계 와인들에는 대부분 라벨에 포도 품종이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따라서 좋아하는 포도 품종에 따라 쉽게 와인을 고를 수 있다. 게다가 대형 회사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고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회사를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중의 장점!
둘째, 신세계 와인들은 빈티지에 구애받지 않는다. 유럽지역은 날씨가 변덕스러워 해마다 포도의 품질이 크게 차이가 나서 빈티지가 매우 중요하다지만 신세계 와인 생산국들은 일정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어 매년 수확하는 포도의 품질에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빈티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세계 와인은 그야말로 구세주ㅎ (음, 그렇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유럽 빈티지 중요성이 가격 형성을 위해 지나치게 포장되었다는 설이 많다. 같은 포도원의 같은 품종의 포도로 담근 같은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수천만원이 넘게 왔다갔다하니 말이다.)
셋째, 신세계 와인들이 더 자유롭다. 구세계 와인들은 그들만의 엄격한 등급제와 생산 노하우를 갖고 있다. 프랑스의 AOC, 독일의 DOC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프랑스의 등급 중 최고 등급이라는 그랑 크뤼가 결정된 건 1885년 파리 만국 박람회 때. 그 사이에 등급이 변한 와인은 단 하나 뿐이라니. 예전 등급이 지금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엄격한 등급처럼 와인 생산법도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전통유지와 같은 좋은 점도 있겠지만, 혁신을 못한다는 안타까운 단점도 있다. 하지만 신세계 와인은 그저 소비자의 입맛에 맛게 이것 저것 혁신적인 시도들을 과감하게 한다. 이 때문에 유행타는 가벼운 정크 와인이라는 욕을 듣기도 하지만, 바꾸어말하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맛이라는 것 아닌가. 신세계 와인의 문턱이 더 낮다.
넷째, 싸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세계 와인들은 대형 회사가 만드는 경우가 많다. 즉, 규모의 경제!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내놓는 게 가능하다는 뜻! 직접 마트, 와인바, 백화점, 주류백화점에 가서 가격을 비교해보시라.
다섯째, 맛있다. 1976년과 2006년. 프랑스 와인과 신대륙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두 차례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 산의 압승. 특히 2006년은 1976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벼르고 연 시음회였는데 1~5위까지 캘리포니아가 싹쓸이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 신대륙 와인이 구대륙 와인보다 인지도에서는 많이 떨어지지만 맛에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입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와인은 빈티지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이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소리도 있다.)
뭔가 있어보이는 프랑스 와인도 좋지만, 오늘 저녁 가볍게 한 잔 하길 원한다면, 신세계 와인을 고르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