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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2500원짜리 설렁탕집, 종로의 유진식당을 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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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2500원짜리 설렁탕집, 종로의 유진식당을 가다

아우르기 2009. 8. 17. 03:30

1.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음식 중의 하나인 설렁탕. 대체 설렁탕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해보고자 한다. 설렁탕의 원조는 선농탕. 선농단에서 거행된 선농제라는 축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농업국가였던 조선이기에 농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농사가 하늘 아래 것의 근본(農事天下之大本)이란 소리가 나왔겠는가. 선농제는 농업이 매우 중요했던 당시 사회를 반영하는 풍습으로, 왕과 관리들이 직접 소를 몰고 밭을 갈며 당해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퍼포먼스가 끝나면 하늘에 쇠고기를 바쳐 제사를 지냈다. 제사 후에는 제사 때 쓰였던 쇠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왕과 관리들은 물론이다!)은 물론 동네 주민들까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 때, 제사 때 바쳤던 쇠고기를 신성한 것이라 하여 어느 한 부위도 버리지 않고 한 솥에 푹 끓였다.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다 같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이 바로 선농탕이라 한다. 100명이 모인 걸 보고 100인분을 끓였는데 10명이 더 오면 어떡하냐고? 그냥 물을 더 붇고 다시 끓이면 되지 뭘~ 같이 먹는 게 의미를 두었을 뿐, 더 진한 국물 먹겠다고 나중에 온 사람을 쫓아내는 일 따위는 없었다. 나를 조금 희생하며 남과 더불어 먹었던 음식, 위로는 왕부터 아래는 일반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이 먹었던 화합의 음식, 바로 이것이 설렁탕이다. 이 음식 앞에서는 빈부도 귀천도 계급도 노소도 모두 소용없었다. 모두가 한 솥에 푹 끓여질 뿐이다.


2.
 대중적인 음식인만큼, 설렁탕은 유명한 집들이 많다. 설렁탕과 그 유사 메뉴들로 유명한 집과 가격을 한 번 비교해보자. 전직대통령의 극찬으로 유명해진 봉희설렁탕, 6000원이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 배경 업소로 젊은이들에게 잘 알려진 신선설농탕, 6000원(특은 9000원)이다. 50년 된 곰탕집 하동관의 곰탕은 7000원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음에도 언제나 손님이 꽉 차 있는 독립문 대성집의 도가니탕은 9000원(해장국은 5000원)이다. 비싸서 먹을 엄두도 나지 않는 가격들은 아니지만, 글쎄, 그렇게 싸다고는 못 느끼겠다. 6천원이면 둘이서 자장면을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데 말이다. 떡볶이가 6천원어치면 얼마나 또 많겠는가. 6천원이면 소주 네 병에 새우깡 몇 봉 사서 친구 대여섯명이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진짜 설렁탕이 화합의 음식이라면, 만원 짜리 지폐 한 장에 4인 가족이 한 그릇씩 배불리 밥을 말아먹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억지라고? 떼쓰지말라고? 놀라지마시라. 실제로 그런 곳이 있으니. 바로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유진식당이다.

3.
 종로구 낙원동에 있다. 탑골공원 바로 옆이다. 탑골공원 북문을 끼고 돌면 바로 보인다. '낙원상가'라고 크게 쓰여진 간판을 마주보고 오른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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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서부터 무언가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덕지덕지 때가 낀 빛바랜 현수막. 손으로 휘갈겨쓴,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입간판.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유구한 맛집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날이 정말 더웠다. 5월 24일이었는데, 크, 무더운 뙤약볕에 줄을 서 있자니... 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고역이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기다리는 사람들의 연령대. 반 이상이 어르신들이셨다. 아마 저렴한 설렁탕과 고향생각을 물씬 나게하는 평양냉면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4.
 일반적으로 실내에 다가가면 점점 시원해지는 게 정상일 터인데, 이 집은 이상하게 문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더워졌다. 이상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녹두전을 부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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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식당의 녹두전은 돼지기름으로 부친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위생비닐봉투에서 비계를 꺼내 기름을 녹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의 눈에는 자칫 불결해보일 수 있다. 저 징그러운 비계로 녹두전을 '튀겨' 낸다니 말이다. 그렇지만 녹두전 집을 조금만 돌아다니다 보면 알 수 있다. 손님들 앞에서 저렇게 자신있게 비계를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깨끗한 비계를 쓴다는 당당함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유진식당 바로 왼 편에는 정육점이 있다. 그 집에서 가져오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 돼지비계기름은 먹을만큼 위생적으로 보였다. 다만, 기름을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 흠일까. 녹두전으로 유명한 종로5가 광장시장의 녹두전골목보다 더 많이 쓰는 듯 했다.

5.
 드디어 실내로 들어섰다. 혹시 식사하시는 어르신들께 폐가 될까 전체 실내샷은 찍지 못해 아쉽다. 크지 않다. 또한 좌석이 편안하지도 않다. 혼자 가신 분들은 때론 초면인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기도 한다.

 메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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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가. 설렁탕 2500원. 자장면도 3500원을 호가하는 요즘, 정말 싼 값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마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값과 별 차이가 없을 거다. 그 외에도 돼지머리국밥, 술국, 수육 등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소주도 2000원이다. 일반 음식점보다 1000~1500원 가량 저렴하다.

6.
 설렁탕과 냉면, 그리고 아까 눈여겨보았던 녹두지짐을 시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시키면 녹두지짐이 제일 처음 나오고 본식사가 나올 텐데, 여기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되는대로 후딱후딱 가져다 준다. 식당은 작고 손님은 많은지라 테이블 회전률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다 먹고나면 빨리빨리 나가줘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가 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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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뎀. 사진을 잘못 찍었다는 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 사진 편집 툴로 최대한 보정을 한 게 이거다.(포샾을 쓸까하다가 귀찮아서 패쓰... 써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에이, 2500원짜리가 뭐 별거 있겠어? 그냥 희뿌연 국물에 고기 두어점하고 밥 말아 나오겠지 뭐."라는 사람들, 떽. 결코 그렇지 않다. 뚝배기의 크기는 일반적이다. 절대 작은 크기가 아니다. 잘 보이진 않지만 사진 속 숟가락 위에 얹혀진 게 고기다. 건더기의 양이 결코 섭섭하지 않다. 맛집으로 알려진 유명 설렁탕집의 그것보다는 적을 지언정 평균보다 적은 양은 단연코 아니다. 밥의 양도 적당해서 다 먹고나니 배가 잔뜩 불러왔다.
 그렇다면 맛은? 아쉽게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중 설렁탕에 프림과 미원 등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 70%냐 90%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유진식당의 설렁탕은 진하고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았다. 선농제에서 급히 물을 더 붇고 끓였을 때의 설렁탕 맛이 아마 이런 느낌과 비슷했을 거다. 무슨 말이냐고? 심심했다는 거지 뭐. 마치 물 탄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기육수 맛보다 조미료 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마침 조리사의 컨디션이 안좋은 날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시 맛 볼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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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먹었던 깍두기는 먹을만했다.

7.
 설렁탕을 먹고 있을 때 녹두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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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릿노릿 바삭하게 예쁜 색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역시 맛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차라리 조금 더 걸어서 광장시장을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전의 가운데 부분은 색처럼 잘 익었다. 노릇노릇, 전의 정석이었다. 그러나 가장자리 부분은 기름에 튀겨졌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지진다고 해서 지짐이, 부친다고 해서 부침갠데 이건 녹두튀김이었다. 들어가는 재료도 흡족하지 않았다. 갈린 녹두를 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맛이 약했고 채소의 양은 너무도 적었다.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저 사진을 보라.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야채? 고기? 다 기대 이하였다. 색과 향은 일품이었으나, 거기까지였다. 맛에서는 전혀 흐뭇하지 않았다. 딸려나온 양념장도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결국 4인 가족이 가서 다 먹지 못하고 나왔다.

8.
 마지막, 평양냉면이다. 간판에 '유진식당 설렁탕'이 아니라 '유진식당 평양냉면'으로 적어놓은 걸 보아 이게 이 집에서 자랑하는 메뉴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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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면은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평양냉면'하면 생각나는 그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담백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달까.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담백이 아니라 심심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냥 담백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식초와 겨자를 적당량 풀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 나아졌다. 재료는 보이는 그대로. 아, 고기는 미국산이 아닌 호주산을 쓴다고 하니 그 점은 안심해도 좋겠다. 하나 특징적인 점. 양이 정말 많다. 첫번째 사진, 절대 과장되게 나온 게 아니다. 그릇이 정말 크다. 큰데, 면이 가득 들어있다. 성인 남성이 아니곤 다 남길만한 양이다.

9.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에 '이 집 절대 가지 마세요!!'따위의 말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고, 조미료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났었다. 담백하지 않고 심심했으며 부드럽지 않고 느끼했다. 맛집을 탐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음식점에 딱 들어섰을 때 어르신들, 특히 혼자 오신 어르신들이 많다면 그 집은 역사를 자랑하는 진짜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역시 통계는 통계일 뿐인가 보다. 그렇지만 또한 분명한 게 있다. 단 돈 만원으로 4인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 4000원으로 다 먹지도 못할만큼의 냉면을 주는 곳, 손님 앞에서 떳떳이 비계기름을 녹일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는 거다.

10. 아우르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어쩌면 식당의 어르신들은 식사를 잡수러 오신 게 아니라 정을 잡수러 오신 게 아닐까. 혼자 공원에 넋놓고 앉아서는 느끼지 못할, 2500원의 풍족한 정을 말이다. 또 생각이 났다. 어쩌면 시간을 잡수러 오신 게 아닐까. 하루 종일 서성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는 어르신들. 오며, 가며, 기다리며, 먹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여가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말이다. 우리 사회, 어느 샌가 어르신을 공경하지 않게 되버렸다. 이름만 '어르신'이면 뭘하나. 사회 저변엔 '늙으면 쓸모없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있지 않은가. 그러나 최근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나이가 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지능 영역, 혹은 오히려 능력치가 올라가는 지능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앞다퉈 증명하고 있다. 애나 어른이나 늙은이나,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떳떳하게 한 세상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아들딸을 키우고나니 나가라고 등 떠미는 이 매정한 사회에서 난 바랄 게 없네..."
- MC.Sniper <고려장>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