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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村)스럽다 ? 촌(忖)스럽다 !

아우르기 2009. 1. 15. 21:39
1.
 언제부터인가 다음 아고라는 웹 민주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과 비견되는 범국민 촛불 시위가 바로 아고라에서 시발되지 않았는가. 웹 민주주의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성별과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아고라청원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곳에는 심심찮게 초등학생의 청원이 올라온다. 오프라인 정치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현실에서는 그들의 지적 수준 등을 의심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청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딩'들의 글이 아니다. 배우지 못해서 무식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권 교육을 다 받지 않았기에 때묻지 않은 시선으로 제도권의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일제고사를 거부하여 파면, 해임당한 선생님들을 되찾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 그리고 손에 파란 풍선을 들고 광장에 나섰던 그들의 걸음. 누구도 그들을 '초딩'이라며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여론을 호도, 변질시키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중하게 아고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신선하고 의미있는 청원이 많다는 것을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촌스러워고마워요' 캠페인이 그 산뜻한 청원 중 하나이다.


2.
 어르신, 교도소, 양성평등... 언뜻 보면 전혀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이들 어휘 사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순화된 언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노인, 감옥, 남녀평등을 순화한 말이다. 언어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힘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성장기 가치관 정립에 큰 영향을 받는다. 가치관 정립 이후에도 크고 작은 가치 판단 문제에서 우리는 언어의 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를 빌어 욕을 함으로써 개를 하찮게 여긴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외치지만 '남녀평등'이라는 단어에서조차 남성이 먼저 거론됨으로써 남성이 여성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세뇌시킨다. 이처럼 올바르지 못한 언어 사용은 자칫 개인에게 그릇된 사고를 심어줄 수 있다. 언어 순화 운동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다. 범범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감옥'을 교육을 통해 정신을 정화시키는 '교도소'로 만드는 운동인 것이다.

 촌스럽다 村---
[형옹사]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복장이 촌스럽다.
 그는 제멋대로 깍아 버린 촌스럽운 머리 모양을 하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그는 투박하고 촌스럽고 볼품이 없었다.
 그 애는 성만 일본식으로 갈고 이름은 복순이라는 촌스러운 본명 그대로였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국어사전에서 '촌스럽다'를 찾으면 위와 같은 설명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쓰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우리는 국어사전에 실린 용법대로 알맞은 국어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뜻이 과연 바람직한 풀이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촌(村)은 우리말로 시골이다. 도시와 대비되는 농어촌을 일컫는 말이다. 바꾸어 말해서 '촌스럽다'는 '농어촌스럽다'라는 거다. 농촌 스타일, 어촌 스타일을 국어사전에서는 세련되지 못하다고, 어수룩하다고 부정적으로 기술해 놓은 것이다.
 도농 간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 차이 뿐이 아니다. 문화적, 생활적 간극도 매 순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촌스럽다'라는 말도 도농 간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요소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 도시에서 '시골틱하다'며 시골을 무시하는데, 어떻게 둘 사이가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시골을 구시대적 산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 산물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농어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촌스럽다'의 부정적 풀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3.
 지금 아고라청원에 올라온 청원 중 하나가 바로 이 '촌스럽다'의 정의를 바꾸길 요구하는 내용이다. 바른 일이기에 흔쾌히 서명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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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분들은 아고라 게시판에서 직접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64242

4.
 촌(村)과 우리말로 동음인 한자어로 촌(忖)이란 한자가 있다. 헤아리다, 미루어 생각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우리네 시골 사람들의 마음과 딱 맞는 한자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어사전에 '村스럽다'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忖스럽다'와 병행하여 표기하는 것이 어떨까. 긍정적인 의미로 자연스레 바뀔 수 있을 뿐더러 그 의미가 시골의 훈훈한 인심과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

 촌스럽다 村---, 忖---
[형용사]
1. 상대방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려 불편함이 없도록 따뜻하게 대한다.
2.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남을 돕는 데 적극적이다.
3. 조금도 숨김이나 거짓 따위가 없이 깨끗하다.
그가 나를 촌스럽게 맞아주자 이내 서운한 마음이 풀리고 말았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사회에 기부한 김밥 할머니의 촌스러운 선행은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촌스러워 믿을 만하다.

 위 풀이는 내가 생각한 바람직한 '촌스럽다'의 풀이다. 촌(村)의 촌(忖)은 도시 사람들이 넘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더 이상 '촌스럽다'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존중. 부유함을 넘어선 아름다움으로 가는 필수조건이 아닐까.

 촌(村)스럽다 ? 촌(忖)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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