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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너에게 묻다/ 史 진정한 역사

신사임당, 구시대적 여성인가

아우르기 2009. 1. 16. 02:22
 2007년, 10만원권 지폐 발행이 한창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지폐 속 인물이 과연 누가 될 것이냐'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장영실, 안창호, 유관순 등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결국 후보는 두 명으로 좁혀졌다. 신사임당과 김구였다. 여성계는 잔뜩 들고 일어났다. 신사임당과 같은 구시대적 여성상을 지폐의 인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유관순이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과연 신사임당은 구시대적 여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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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의 의견은 정반대다. 신사임당은 지금을 사는 어떤 여성보다도 진보적인 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의 여성만큼 진보적이었다.

 우선, 그녀는 자기계발에 꾸준했다. 대한민국의 정규 교과 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사임당의 초충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중국에까지 소개가 되었다 하지 않는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류열풍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친구 치마의 얼룩을 가리기 위해 그림을 그려주었다는 일화. 미대 다니는 친구가 내 컨버스에 데코그레이션을 넣어준 격이다. 비단 미술에서만 탁월한 재능을 자랑했던 것은 아니다. 친가에서 나오는 길에 어머니를 그리며 읊은 시 <사친(思親)>은 지금도 전해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이와 같은 그녀의 능력은 꾸준한 계발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여성만큼 진보적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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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그녀는 당시 시대가 요구했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일에만 빠져 집안일을 게을리하고 남편과의 금슬이 좋지 않았다면 우리는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난설헌처럼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인물로 회고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었다. 자기계발을 꾸준히 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한 시부모님 봉양, 남편 받들기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이는 최근의 여성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흔히 집안 일과 사회 일을 양분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를 취하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의 괄목할만한 진보로 살림이 매우 편리해졌음에도 말이다.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만 했던 시대에 자신의 꿈과 살림을 모두 이룬 그녀. 이것이 지금의 여성보다 진보적인 이유이다.

 어쩌면 신사임당은 미래의 그 어떤 여성보다도 진취적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에 더불어, 유기체로서 해야할 가장 근본적인 종족 번식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성공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실력을 쌓고, 소속 집단의 역할 기대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생명체의 가장 기본인 친육의 성장도 훌륭히 이루어 냈다. 앞으로 어떤 인물들이 역사 속으로 등장할지는 모르겠으나 신사임당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 시대 알파걸 신사임당. 과연 이럼에도 그녀를 구시대적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