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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너에게 묻다/ 史 진정한 역사

백범 김구 죽이기

아우르기 2009. 1. 18. 17:32

 소위 '뉴라이트'라 불리는 세력들이 있다. 스스로 신(新)우파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기가 막힌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역사 교과서 관련 문제다. 지난 반 백 년동안 어렵사리 식민사관을 극복해 왔더니 이제와서 다시 식민사관, 자학사관으로 돌아가자 한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었던 바로 그 논리로 말이다. 이 뿐아니다. 지나친 친미, 친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인종 차별을 은연 중에 옹호하기도 한다. 이들이 출간한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보고 있자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의 태생이 친일, 친미, 친러파이니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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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행보 중 최근 문제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이승만 띄우기다. 조만간 이승만에 대해서도 논하겠지만, 이승만은 절대 국부가 아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자체가 대한민국에겐 쪽팔리는 일이다. 그동안 이승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는 이승만을 국부로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더불어 최규하, 윤보선 등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갖추고 있다. 심지어 버스 정류장의 이름이 '윤보선 전 대통령 가옥' 등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승만 등 기득권들의 손을 들어준 대통령을 살리다보니 반대급부적으로 죽여야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백범 김구다. 이승만이 정읍 발언으로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외칠 때 백범 김구는 남북한을 오가며 남북협상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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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스스로를 중도우파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내 눈에도 뉴라이트의 언행들은 그네들의 이익을 위한 매국행위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정치적 행보는 자신의 이익을 향해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구 죽이기'는 찬성이다. 물론 그들이 죽이는 이유와 내가 찬성하는 이유에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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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는 조작되었다. 일제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사회주의자였다. 이에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내세울 독립운동가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승만 정권과 김성수 일파의 입맛에 맞는 적당한 인물을 찾는데, 그 인물이 바로 김구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훌륭한 독립운동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우파였기에 사회주의와 맞물리는 문제도 없었다. 여운형처럼 올곧은 고집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인물도 아니었기에 이용해먹기에 간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정권과 김성수 일파는 김구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이승만 이후 계속되는 군사정권 아래에서 김구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조성될 수 있었던 건 정권의 조작 덕이 크다. 박정희가 이순신을 신격화하여 자신의 집권에 이용했듯이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은 김구를 위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그들 기득권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는 김구의 업적들은 한껏 부풀려져 있다. 김구의 업적은 여운형이나 김원봉의 그것에 크게 못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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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김구는 민족 대 결합을 방해했다. 물론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로 상징되는 남북협상을 이끈 인물이긴 하다. 허나 남북협상은 결국 실패했고, 김구는 남북협상의 성과로 가릴 수 없는 분열을 이미 조장한 바 있다. 1920년대 국내외에는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었다. 1930년대에는 이 운동이 더욱 강하게 불었다. 1935년, 마침내 민족 유일당 운동은 정점을 찍게 된다. 민족혁명당의 창당으로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 굵직굵직한 독립운동가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사실상 모두가 민족혁명당에 모일 때, 단 한 명만이 자신의 당을 고집했다. 김구의 한국독립당이다. 결국 이 한국독립당의 존재는 후에 민족혁명당에서 조소앙계, 지청천계 독립운동가들이 탈퇴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김구가 한국독립당을 유지하며 내세운 명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계승. 그러나 내 눈엔 일리있는 주장 같지가 않다. 이미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서 사건으로 정당성을 잃었고 이어진 국민대표회의에서 대표성마저 잃었다. 임시정부에서 탈퇴한 대다수의 인사들은 민족혁명당으로 이동했다. 만일 김구가 자신의 옹고집을 버리고 중국 내 민족 단일 전선 형성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해방 이후 당당히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둘째, 김구는 친일파를 청산하려 하지 않았다. 결탁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친일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 강북 삼성 병원의 자리엔 과거 김구가 환국 후 살았던 경교장이 위치해 있었다. 경교장 건물이 현재 병원 건물로 그대로 쓰이고 수 년전까지 김구의 친자가 근처에 거주하기도 했다. 그런데 독립운동만 하던 김구가 무슨 돈으로 경교장을 마련했을까? 경교장은 일제시대 조선 최고의 거부라던 최창학이 김구에게 제공한 것이다. 일제시대 제일의 거부. 익히 짐작하듯이 최창학은 친일파다. 이뿐이 아니다. 유명한 친일파 김성수를 비롯한 여러 갑부들은 김구를 위해 후원회를 결성하여 금전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귀국 후 첫 기자회견에서 보이는 그의 말은 우리가 알던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것이 아니다. "불량분자를 제거하고 통일을 하는 것이나 통일 후 불량분자를 제거하는 것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불량분자, 즉,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분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운신의 폭을 넓게 하려는 그의 계산이 보인다. 김구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더라면 우리는 이승만을 칭송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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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는 제헌국회를 망치는 데 일조했다. 물론 그는 한반도 통일 정부를 지향하는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에는 참여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러나 정치적 소신을 지키기 위한 그의 행동은 이후 그를 따르던 많은 인물들의 선거 거부를 이끌어 냈다. 결국 제헌국회는 친일파와 기득 세력들로 득실거리게 되었고 바른 대한민국 세우기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많다. 나 또한 그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김구의 선거 참여 거부로 제헌국회에 친일파가 들끓게 되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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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습다. 반 세기동안 한껏 띄워놓았다가 이제와서 다시 깍아내리는 서생원들의 짓거리가. 그렇지만 소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다하지 않는가. 결과적으로 김구를 비판하고 있는 행동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부동의 1위 김구. 이번 일을 계기로 김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