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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길을 떠나다/ 韓 국내 여행

07. 02. 부산 - 2

아우르기 2009. 1. 24.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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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생 처음 어른 없이 해보는 여행.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서울에서도 툭하면 버스를 거꾸로 타서 시내를 한바퀴 도는 내가 목적지까지 정확하고 빠르게 척척 가버렸다. 사실 '서울 깍두기'에서 밥을 먹기한 결정은 내게 길을 헤메는 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단 한 번도 발을 헛딛지 않고 척척 가버렸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도보로 2~3분 거리에 있는 '씨클라우드'라는 곳이었다. 2인 조식을 포함해서 채 10만원이 안되는 금액으로 예약하여 나름 뿌듯했다. 게다가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객실. 언제나 콘도에서만 잠을 청하다가 처음으로 고급 호텔을 이용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남포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부산의 대학로'라 불리는 서면역에서 환승을 해서 해운대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오는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홀로 우뚝 선 건물이 보였다. 씨클라우드. 우리가 묵기로 한 호텔이다. 10 여 분을 걸어서 호텔에 도착했다. 해운대 주변 에서는 눈이 너무 즐거웠다. 사실 해운대까지 이동하면서 눈이 오염이 되었던 터다. 해운대 누나들께 감사한다.

 예정은 이러했다. 호텔에 가방을 내려놓고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나간다. 동백섬 방면으로 모래사장을 걷다가 동백섬에서 경관을 즐기고 덤으로 누리마루에도 들린다. 그 길로 광안리 해수욕장의 횟집 센터에 가서 저녁삼아 회(와 소주)를 먹는다. 말도 안될만큼 순조로웠던 여행. 여기서 여행일정이 망가질건 생각도 못했다.

 호텔 로비로 가서 직원에게 말했다.
 "저.. 예약을 했는데요."
 직원은 깜짝 놀란듯 눈을 한껏 크게 뜨며 말했다.(이 호텔 직원의 반응에 당황했다.)
 "...네~에?!"('네, 그런데요?'와 같은 뉘앙스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순간 움찔했지만 곧 예약인 이름을 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행동했다.
 "XXX이요"
 여전히 두 눈을 땡그랗게 뜬 채로 직원이 물었다.
 "두...분 이세요?"
 나는 영문을 모른채 그렇다고 대답했고 이어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20세 이상의 성년과 함께 체크인 하실 수 있습니다. 미성년인 두 분께선 체크인을 하실 수 없습니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한 나는 직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예약을 아버지 이름으로 했고, 88년생인 우리는 이미 법적인 성년이고, 이러쿵 저러쿵... 호텔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호텔 직원과 통화 연결을 하기도 했으나 유연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호텔 측의 행동거지 덕분에 우리는 가방을 메고 갈 곳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쩐지 여행이 너무 순조롭더라. 이 후, 부모님께서 콘도를 잡아주시기 전 까지(난리법석을 피워가며 잡았다) 우리는 PC방에서 죽치고 앉아있었다. 약 2시간. 이걸로 해운대를 여유있게 걷자는 계획은 물거품이 됬다. 부산까지 와서 원정 게임을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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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콘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30~40분 가량 걸어야 미치는 곳이지만 우리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호텔보다 더 괜찮은 선택이었다. 만약 호텔에 무사히 입성했다면 저녁에 바지락 칼국수를 끓여먹는 센스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씨클라우드 수페리어룸엔 취사시설이 없다)

 숙소에서 잠시 쉬다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 가까웠다. 비록 여유있는 모래사장 산책과 동백섬, 누리마루 관람은 못했지만 부산의 싱싱한 회를 놓칠 순 없었다. 콘도 앞에서 택시를 타고 광안리로 가자고 했다.
 아,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광안리 횟집 센터로 가주세요."
 택시기사가 말했다.
 "아, 회 드시게요? 그럼 광안리로 가지말고 해운대 쪽으로 가세요."
 말투에서 물씬 풍기는 부산 냄새. 기사는 계속 미소를 잃지 않았고 몸에는 친절이 배어있었다. 택시 기사라면 그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우리의 행선지를 맡겼다.
"그럼 제가 잘 아는 횟집으로 모실게요"
좌로 갔다 우로 갔다 올라 갔다 내려 갔다... 요금계가 4천원을 찍자 우리 앞에 횟집이 모습을 드러냈다.(카메라를 가지고 나오지 못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화질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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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횟집엔 손님이 전혀 없었다. 자리에 앉자 횟집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뭐 먹을꺼니?"
 "모듬회 주세요"
 "얼마 줄건데?"
 '.....!!!!'
 겉으로는 내색을 안했지만 속으로 나는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곳은 횟집임엔 틀림이 없었으나 '정찰제'가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너희 학생이지? 원래 모듬회 小는 8만원인데 돈이 없는 학생들이니까 특별히 7만원에 줄게."
 젠장. 택시기사 말을 듣는 게 아니었다. 벌써 사기꾼 냄새가 물씬 풍겼다.
 "할머니 고향이 부산이신데요(울 할머니 고향은 충청도...), 3만원이면 건장한 청년 둘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회를 구할 수 있다 하셨거든요?"
 아주머니는 고수였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응, 그건 비위생적인 가게에서 아무렇게나 쑥쑥 썰어서 초장집에서 먹는 경우야. 그런데 우리는 아주 위생적으로, 정교하게 회를 뜨고 스끼다시도 훌륭한 품질로 잔뜩 준비해 놓는단다."
 결국 5만원에 합의를 보았다. 아주머니는 계속 여운을 주었다.
 "우리가 진짜 이렇게 판 적이 없어. 돈이 없는 학생들이 부산에 놀러와서 특별히 주는거야. 대신 다음에도 꼭 와야돼."
 꼭 오기는 개뿔. 곧 이어 나온 회는 가관이었다. 생선이 세 점씩 12덩이가 있었다. 아주 조그마하게. 맛은 서울의 싸구려 해산물 부페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친숙한 이름의 소주만이 내 입을 달래주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서울말투를 쓰는 아이 두명이 찾아왔는데 곱게 돌려보낼리가 없을 것 같다. 횟집 이름은 '참 좋은 횟집'이다. 정말 좋다.
 횟집에서 콜택시를 불러 해운대 해수욕장까지 갔다. 가는 동안에 택시 기사가 해준 말에 우리는 더 어이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서울 손님에게 횟집을 소개해주면 광안리의 전통있는 큰 회센터를 소개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갔던 곳과 같은 이름 없는 횟집을 소개해 주는 건 무언가 뒷 거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청년 둘이 회를 먹으려면 (광어의 경우)2만원을 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도착한 해운대. 그러나 웅장한 밤바다 소리와 칠흑과 같은 거대한 어둠에 우린 곧 도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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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는 정말 거대했다. 새까만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자면 그대로 빨려들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조금 전의 회 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